자유게시판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얼마 전 안중근 의사를 기본 테마로 잡고 하얼빈과 뤼순으로 여행하고 왔습니다
안중근 의사와 관련된 곳은 모두 다녀왔는데요
세 가지 궁금한 것이 있어서 질문 글을 남깁니다

질문1
안의사가 하얼빈에 머무는 동안 김성백씨 집에 있었다고 했는데, 그 김성백이란 사람은 대동공보라는 신문사를 만들고, 동흥학교를 개교했다고 들었습니다
그중 동흥학교는 현재 '하얼빈시 도리 조선족 중심 소학교'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하교시간 이후여서 경비 아저씨에게 양해를 구하고 내부를 구경했습니다
2층 회의실이 이 학교의 역사를 담은 전시관이던데, 여기서도 안 의사의 얼굴을 볼 수 있어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분명 저는 김성백씨가 이 학교를 만들었고, 교장으로 재직했다고 들었는데, 학교 연혁을 보니 초대 교장의 이름이 김성백이 아닌 김성옥이란 사람이었습니다
김성옥이란 인물은 누구이며, 김성백과는 어떤 관계였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이 학교의 운동장을 한국의 안중근 관련 협회가 지어줬다고 합니다
현재 이 학교의 학생 수는 얼마 되지 않고, 그래서 시설이 열악하고, 운동장이란 곳도 허술하게 방치된 채로 남아있었습니다
이 운동장을 애초에 꾸며준 협회는 어디이며, 현재 아무렇게나 방치된 이 학교를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궁금합니다

배우 이영애씨가 예전에 찾아와서 10만 위안을 기부하고 갔다는 소식이 그나마 속상한 마음에 위로가 되는군요ㅠㅠ

질문 2
하얼빈역이 현재 모두 뜯어내 공사중입니다
그래서 역사 가까이에 있었다는 안중근의사 기념관이 조선 민족 예술관으로 재이전했는데요
듣기로는 2018년 이후 하얼빈역이 재건립 되면 옮길 거라고, 이토 히로부미 저격 장소와 바로 이어지도록 하겠다는 얘기를 본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현지 기념관 직원들은 정확한 내용은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정말 2018년 이후 재이전할 계획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질문3
제가 2월인가에 남산 안중근의사 기념관에 한번 방문했었습니다
3층인가에 이토 저격 전 안중근 의사의 심정을 들어보라며 전화기를 설치해 두었던 걸 봤는데요
그 전화기 상태가 좋지 않아 성우의 음성을 들을 수 없었고, 그래서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거 현재는 어떤 모습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방치되어 있다면 시정 부탁드리고, 두번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치 취해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첨부파일 다운로드

등록자김연정

등록일2017-06-23

조회수213

  • 인쇄하기
 

관리자

| 2017-06-28

추천하기0반대하기0댓글등록

안녕하십니까,
안중근의사기념관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주신 질문에 간단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1. 간략히 말씀드리면 김성백은 『대동공보』나 동흥학교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대동공보』는 블라디보스톡에서 최재형이 만든 『해조신문』이 폐간된 뒤, 제호를 바꾸어 재창간된 신문이며, 1909년 당시에는 이강 선생이 주필을 맡고 있었습니다. 하얼빈 시내에 있는 동흥학교(현재의 ‘할빈도리조선족중심소학교’)를 세운 사람은 김성백의 둘째동생 김성옥이 맞습니다. 다만, 김성백은 할얼빈 한민회 회장으로서 동흥학교를 설립하는 데에 재정적인 후원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두 살 때 부모의 손을 잡고 함경북도 종성읍을 떠나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에 이주해 갔던 김성백은 러시아에 귀화하여 ‘치혼이바노비치 김’이라는 러시아 이름을 가졌고 러시아의 동방정교를 믿고 정식세례를 받았습니다. 김성백은 1907년 가을, 하얼빈에 이사 와 부두구 레스나야가28호(지금의 도리구 삼린가34호)의 러시아식 단층 목조건물에서 살았습니다. 김성백은 청부업자로서 동청 철도건설에 참여하였으며 러시아 통역까지 겸하고 있어 러시아 관헌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인물이었습니다.

1909년 7월 27일, 하얼빈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인 70여명이 한자리에 모여 회의를 열고 <한민회> 창립을 선포합니다. 한민회(韓民會)는 하얼빈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인들이 민족의 생존과 발전에 부딪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민간자치제 조직입니다. 이 회의에서 하얼빈 조선사회의 유력자였던 김성백(당시 32세)을 회장으로 선출했습니다.

1909년 10월 22일, 안중근, 우덕순, 류동하 세 사람이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기 위해 하얼빈에 도착했을 때, 바로 한민회장 김성백의 집으로 찾아갑니다. 류동하와 김성백은 사돈지간이었습니다. 류동하의 두 살 아래 여동생 류안나는 김성백의 넷째동생 김성기(러시아명 알렉산드르)와 약혼한 사이였고, 김성백의 셋째동생 김성엽은 수분하에 있는 류동하의 부친 류경집의 병원에서 치료 중이었습니다. 김성백은 류경집의 집에서 안중근을 만난 적이 있었기 때문에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할 때까지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수분하 중국세관에서 서기로 일하고 있던 정대호는 “조선에 가서 가족을 데리고 오는 길에 나의 가족도 같이 데려와 달라”는 안중근의 부탁을 받고 자기식구 6명 외에 안중근의 부인 김아려와 각 2살, 4살 된 두 아들(분도와 준생)을 데리고 하얼빈에 도착하여 김성백의 집에 묵었습니다. 하지만 도착한 날이 10월 27일로 하얼빈 의거 바로 다음날이었기에 서로 만나볼 수는 없었습니다. 이후 정대호는 체포되어 안중근과 같이 뤼순에 압송되고 정대호의 세 식구와 안중근의 처자 세 식구는 11월 22일, 하얼빈을 떠나 수분하에 갈 때까지 줄곧 김성백의 집에 묵으면서 많은 신세를 졌습니다.

이상이 김성백과 안중근의사에 대한 간략한 이야기입니다.


2. 하얼빈역은 2020년까지 신축공사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이후 현재보다 확장하여 안중근의사기념관을 설치할 계획입니다.

3. 관람하셨던 날에 전화기가 수리 중이었나 봅니다. 전화기는 수리되어 현재 정상 작동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안중근의사기념관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스팸방지코드 :